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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알아보자!

by 스노우스톰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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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서아시아에 있는 도시이다. 팔레스타인 중심부의 지중해 연안 평야와 요르단 강에서 이어지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이렇게 세 가지 종교의 성지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이 발생하고 있고 도시는 행정상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있으나 사실상 텔아비브가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1. 역사

기원전 1550 ~ 1200년경에 예루살렘은 이집트 속국 도시 국가의 수도였으며, 작은 이집트 수비대가 있는 초라한 정착지였다. 기원전 10세기경 다윗 왕이 '시온의 성'이라 불리던 도시를 정복한후 유대인들은 이곳을 '다윗의 성'이라 불렀고,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중요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정복되어 유다 백성들은 바빌론에 억류되고, 기원전 537년 페르시아 왕 키루스 2세에게 석방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 하였다. 기원전 37년 로마령으로 확정되고 그 후 로마는 전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이방인의 도시'라고 불렀다. 4세기에 로마가 기독교화되고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638년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슬람 사원이 솔로몬 성전 터에 세워졌다. 1260년 훌라구의 몽골군이 예루살렘 근방까지 왔으나 맘루크 왕조의 바이바르스가 몽골군을 몰아냄으로써 맘루크 왕조의 성지 관할권이 확립되었다. 1516년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400년 내내 지배하였고, 19세기 초반에는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아르메니아인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되었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를 인위적으로 점령하였다. 1980년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결의로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여 이스라엘에 있는 각국의 대사관과 대표부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있다.

 

2. 구시가지

중세시대에 존재한 예루살렘 읍성의 성벽으로 둘러쌓인 옛 시가지를 말한다. 1860년까지는 여기가 예루살렘의 전부였다. 지금의 성벽은 16세기경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 시대에 다시 지어졌고, 성의 출입구인 11개의 문 중 7개는 지금도 개방되어 있다. 지금의 예루살렘 읍성은 '무슬림 구역', '기독교인 구역', '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4 분할되어 있다. 이 구분은 1841년 영국에서 제작한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지역 지도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 각 인종의 불균일한 분포 양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나눈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4개 구역이 사회문화적으로 유의미한 구분이 돼버렸다.

198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어느 나라의 유산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저 도시명과 함께 '요르단이 제안한 유적'이라고 덧붙였다.

 

3. 나뉜 견해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 철폐와 가나안에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건국 직전에 유엔 총회에서는 예루살렘은 둘 중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별개의 구역으로 유엔에서 관리하기로 했었는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전쟁의 발발로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하여 다스리도록 다시 결의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직후에 이스라엘의 중앙정부가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을 동서통일하여 예루살렘 관구를 창설했고, 1980년 이스라엘 국회에서 예루살렘 기본법을 입법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예루살렘 관구에 상주하는 대사급 외교공관들의 철수를 요구, 대부분의 나라들이 유엔의 요구를 받아들여 텔아비브 관구로 이전했다.

이후 예루살렘에 대한 친이스라엘 국가들과 반이스라엘 국가들의 견해차이가 극명하게 나뉘어 현재까지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